'한 잔쯤은 괜찮겠지'의 함정
"하루 한 잔의 와인은 심장에 좋다."
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새 면죄부처럼 자리 잡은 이 말은, 마치 매일 가볍게 마시는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도 일부 연구에서는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도되었죠.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과학계에서는 이 주장에 의문을 던지는 반박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술은 몸에 해롭다'는 식의 이분법을 넘어서, '얼마나 마시면 괜찮은가?', '매일 마셔도 되는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가?'와 같은 더 정교한 질문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신 의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정 음주량의 과학적 기준과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음주의 진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1. ' 하루 한 잔의 건강 효과'는 진짜일까?
한때 널리 인용되었던 유명한 연구 중 하나는, 적당한 음주가 심장병 위험을 낮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주로 와인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들은 적은 양의 알코올이 혈관을 확장시키고, HDL 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며, 혈전 생성을 줄인다는 메커니즘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연구 방식의 한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찰 연구는 단순히 '적당히 마시는 사람'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을 비교하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생활습관, 소득 수준, 식단 등의 변수들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은 사회활동이 활발하고 식습관이 더 건강한 경우가 많아, 술 자체보다 이런 요인이 건강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존의 주장에 반박하며 “건강에 안전한 알코올 소비량은 없다”고 명확히 발표했습니다. 특히 암 발생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작은 양의 음주도 DNA에 손상을 주고 발암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 과학계의 현재 입장입니다.
2. 적정 음주량, 나라마다 왜 다를까?
각국 보건 당국은 나름의 '적정 음주 기준'을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기준은 나라마다 매우 다릅니다.
예를 들어,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남성은 하루 2잔, 여성은 1잔을 넘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 대한민국 보건복지부는 주 7잔 이내(여성은 4~5잔 이내)를 '적당한 음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캐나다 보건부는 최근 가이드라인을 대폭 수정하여, 주당 2잔 이하만이 ‘낮은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처럼 기준이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유전적 차이 때문입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아시아인은 ‘알코올 분해 효소(ALDH2)’의 변이가 많아, 같은 양의 술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얼굴이 빨개지는 '아시아 플러시 증후군'은 그 대표적인 예죠.
둘째, 문화적·사회적 요인도 큽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술이 식사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섭취되는 반면, 어떤 나라에서는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폭음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런 차이는 술에 대한 규제 기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셋째, 연구와 정책의 방향성 차이입니다. 캐나다처럼 보수적인 기준을 채택한 국가는, '최소한의 음주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를 적극 반영한 경우입니다. 반면 어떤 국가는 아직도 ‘절제된 음주는 괜찮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매일 마셔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나는 간 수치도 괜찮고, 매일 한 잔씩 마시지만 별문제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기적 변화가 아닌 장기적 누적 손상입니다.
술은 간에서 분해되고,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하이드는 1급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물질은 세포의 DNA를 손상시키고, 암 유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또한, 매일 음주를 하는 경우, 심리적·신경학적 의존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록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해소나 잠을 자기 위해 술을 찾게 되는 습관이 반복되면 두뇌는 술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재배선되죠. 이는 알코올 중독의 초기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남성보다 같은 양의 술에도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체내 수분량이 적고, 알코올 분해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은 술로 인한 간 손상, 심혈관 질환, 호르몬 변화 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결국, ‘한 잔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누적되면, 수년 후 간질환, 고혈압, 암, 심장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라는 점, 꼭 기억해야 합니다.
적당한 음주란 ‘내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술도 적당히 마시면 약’이라는 말을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말은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음주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완전히 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신 과학의 결론입니다.
그렇다고 금주를 강요하는 글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마시는 술이 정말 ‘적당한가?’, 혹은 ‘그 기준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 가족력, 알코올 대사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스스로에게 맞는 절주 기준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건강을 위한 술은 없습니다.
다만, 건강을 망치지 않기 위한 절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